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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티아 [amentia]>

 

 

 그는 냄새를 맡는다.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서도 냄새를 맡는다. 짐들로 가득한 창고에서도 냄새를 맡는다. 그의 실룩거리는 코는 흡사 경직되기 직전의 길고양이 같았다. 나는 그가 싫다. 그와 함께 있으면 그에게 나의 모든 걸 읽혀버리는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샤워 후 바른 에센스에서부터 겨드랑이에 뿌린 데오드런트까지, 그의 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냄새로 수집한 정보로 취향에 대한 판단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커피 향을 맡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커피 맛을 몰랐고, 땀 냄새가 진동하는 헬스장에서도 무덤덤하게 운동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의 코는 항상 무엇인가를 맡고 있었다. 분명 무엇인가를 맡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오랜 시간 관찰한 바로는 그는 사물을 인지하기 위해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닌 듯 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책을 분류하는 도서관 사서처럼 그는 냄새를 맡고 잊어버리는 듯 했다. 그에게서는 항상 퀴퀴한 냄새가 났고, 그의 차에서는 곰팡내가 났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냄새를 잘 맡지 못해서 오히려 냄새를 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무엇인가를 맡고 있었다. 그것은 그를 기쁘게 만들기도 했고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씰룩거리고 나서는, 어김없이 대상 없는 중얼거림이 시작되었다.

 “좋지 않아... 이건 좋지 않아...”

 그는 꽤 해박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현명하다거나 혜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떤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하는 데에 익숙해 보였다. 그는 틈틈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스포츠 신문, 자기 처세서, 삼류 멜로소설, UFO 기원설에 이르기까지,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있었다.

 

 “지현씨. 돼지 껍데기 먹는다고 피부가 좋아지지는 않아.”

 그때 나는 직장후배와 함께 저녁 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끼어드는 그의 목소리에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리라.

 “아까 그랬잖아. 요새 피부가 거칠어진 거 같으니 돼지껍데기 먹으러 가자고.”

 그는 눈치도 없었다.

 “어차피 돼지 콜라젠은 다 장에서 흡수되어 똥으로 나가는 건데 얼굴로 가는 단백질이 뭐 얼마나 되겠어? 다른 고기 먹는 거랑 실상 별 차이 없어. 게다가 유구촌충이 제일 많이 서식하는 데가 껍데기야. 까딱 덜 익혀 먹기라도 하면, 재수 없으면 뇌에 기생충 기르게 될 수도 있다고.”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똥’이니 ‘유구촌충’이니 하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약간의 희색이 도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과장님. 그러실 게 아니라 저희 같이 회식하러 가시죠.”

 수완 좋은 후배가 말을 받아친다. ‘사실 너도 외로워서 시비 거는 거잖아.’라는 표정을 하고서.

 다시금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희색이 돌았다.

 

 “니들이 글을 알아?”

 그는 이미 술에 취했다. 속 머리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진행 중인 원형 탈모였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표정은 없지만, 그의 감정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도 안 보는 저희가 알 리가 있나요. 과장님처럼 많이 읽으시는 분이야 잘 아시겠죠.”

 후배의 입 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는 국문학과 출신이었다.

 “그런 거 말고, 글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아느냔 말이야. 글자에서 풍기는 냄새 말이야.”

 그의 눈썹 끝이 일그러진다. 기괴했다. 눈썹만 움직이는 것으로 이렇게 답답한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되게 하다니.

 “뭐, 그렇죠. 감동적인 글을 읽으면 저도 조금 말랑말랑해지고 그렇죠. 안 그런 사람 있나요?”

 “아니 그런 정서적 감동 말고, 감각적 인지 말이야. 대표적으로 후각적인 거! ‘달다.’라는 글을 읽고 단맛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달다.’라는 글자 자체에서 느껴지는 냄새 말이야! ‘아’라는 글자를 읽으면 뭐가 느껴져? 좀 달달한, 그러면서 약간은 짠 냄새가 느껴지지 않아? ‘아’라는 글자를 보고 뇌로 생각해서 그와 관련된 이미지를 상상해서 느끼는 그런 거 말고, 글자 자체를 읽으면 온몸으로 느껴지는 냄새 없어? 물론 코가 느낀 거겠지만, 니들은 모르겠어? 여기 이 ‘삼겹살 180g - 12,000원’이란 글자에서 맡을 수 있는 이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냄새 말이야. 후추냄새, 물론 후추냄새랑은 다르지만, 후추랑 소금, 올리브, 생강, 겨드랑이, 비지땀, 개 사료, 신발 밑창에서 나는 냄새들이 절묘하게 결합한 이 냄새 모르겠어? 글자 자체가 온몸으로 말하고 있잖아. 나. 지금. 냄새 난다고!”

 

Ⓒ 고재욱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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